본문 바로가기

유럽 여행/북유럽

세계문화유산 알렉산더 넵스키 대성당과 코투오차(Kohtuotsa) 전망대 [에스토니아 북유럽여행]

 

탈린은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며, 발트해의 핀란드 만 연안에 있는 항만 도시로서 공업의 중심지이다.
모터·수은 정류기·라디오·굴착기·케이블·직물 등의 공장이 있다. 40만여 명이 살고 있다.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까지는 페리로 2시간 반 거리에 있다.
탈린은 1219년,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인들이 만든 성채 자리를 성으로 삼은 데에서 시작되었다. 탈린(Tallinn)이라는 이름도
‘덴마크인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발트 3국으로 불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은 나라다.
멀게만 느껴지고 접근이 어려울 것 같은 이 세 나라는 실제로 접해보면 매력이 넘친다. 이 중 으뜸은 에스토니아다.
‘발트 해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수도 탈린은 유럽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다.

발트 3국은 발트해 남동 해안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세기부터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소련’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20세기 들어 1918년을 기점으로 발트 3국은 각각 독립해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러다 1940년 또 소련에
합병되었다가 1990년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 영향으로 1991년 8월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가난을 면치 못하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여행할 때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

발트 해의 핀란드 만 연안에 있는 항만도시인 탈린은 뱃길이 발달되어 이웃하고 있는 ‘잘사는’ 스칸디나비아 국민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인지 탈린은 생각보다 많이 세련되어 있다.

유럽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로 ‘발트 해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보존이 잘된 이유엔 ‘안 좋은 기후’가
한몫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은 초토화하기 위해 탈린에 접근했다. 그날 안개가 많이 끼어 도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전투기는 발트 해에 폭탄을 쏟아붓고 돌아갔다. 이런 경우를 놓고 전화위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탈린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
(Alexander Nevsky Cathedral of Tallinn)은 에스토니아 탈린 중심부에 있는 동방 정교회 대성당이다.
이곳은 1894~1900년에 건설되었는데, 당시 이 나라는 옛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습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1220년 블라디미르에서 블라디미르 대공국의 야로슬라프 2세 프세볼로도비치 대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귀족들과의 분쟁으로 잠시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떠났지만, 리보니아 독일 기사단의 침입을 걱정한 시민들의
요청으로 1241년에 노브고로드 공화국으로 다시 귀환한 후 1242년 페이푸스 호 전투에서 튜튼기사단에게 승리했다.
이후 그는 침체기 루스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숭배받기 시작했으며 킵차크 한국의 칸에게서 공식적으로 노브고로드공의
지위를 받았고 1252년부터 훗날 전 루스의 대공이라 불리게 되는 블라디미르 대공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툼페아 언덕 위의 러시아 정교회 교회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을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던 1885년에
에스토니아 영웅의 무덤 위에 세운 것이라 하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꽤나 가슴 아픈 장소이기도 하다.
내외부 모두 상당히 아름다운 탈린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그동안 보던 유럽의 성당과는 아주 다른 느낌의 장소라 신선했어요. 러시아정교회 특유의 둥근 지붕도 특별해보입니다.
내부는 무료입장이지만 사진을 찍을수는 없어요. 예배할 때에도 들어갈 수는 있는데 아주 엄숙한 분위기이니
주의해야해요. 예배중에 들어가본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톰페아(Toompea) 언덕위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된 알렉산더 넵스키 대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церковь) 성당으로 탈린에서 가장 큰 성당이며
내부는 화려한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그 화려함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알렉산더 네프스키 (Alexander Nevsky)의 주요 교회는 타린 (Talyn)의 상부 도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 니콜라스 교회 (St. Nicholas Church)와 가깝고 짧은 다리 거리에서 아치를 통과합니다. 러시아 스타일이 분명합니다.

이 성당은 에스토니아가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1900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미하일 프레오브라즈헨스키 (Mikhail Preobrazhenski)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완성된 다음 알렉산드르 야로슬라비치 넵스키
(Александр Ярославич Невский)에게 헌정되었다고 한다.


올드 타운 탈린에 위치한 파트쿨리 전망대

탈린시 북부지역 일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파트쿨리전망대(Patkuli Viewing Platform)가 나온다. 
동화속의 그림같은 빨강색 지붕의 중세 시가지, 서측으로는 연두빛 나뭇잎이 대조를 이룬다. 
시가지 뒤로는 짙푸른 바다(핀란드만)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기념 샷

중세 동화나라 같은 탈린 올드타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올드타운에 대한 첫 인상은 만화 속 동화나라다. 관광객을 위해 잘 지은 세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탈린 올드타운은 13세기부터 세워진 성곽과 건물의 89%가 당시 모습대로 보존돼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 중에서도 중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곳이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발트삼국 중 하나라는 것과, 최근엔 세계 최초로 전자투표를 도입해 인터넷 민주주의로
앞서가는 나라라는 정도다. 소련의 통치하에 있었으니 러시아와 별 다를 게 있을까 싶지만, 틀렸다.
탈린은 ‘덴마크인의 도시’라는 뜻이다.

언덕 꼭대기에는 올드타운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2곳의 전망대가 있다. 코투오차(Kohtuotsa) 전망대에서는 올드타운의 빨간 지붕이 장난감처럼 보이고, 파트쿨리(Patkuli) 전망대에서는 발트해로 떨어지는 석양까지 감상할 수 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특히 젊은 연인들이 몰려들어 동화 같은 이 도시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불어 넣는다.

1917년 제정 러시아의 몰락으로 1차 독립을 이루었지만, 독일과 소련의 밀약으로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병합된 후 1991년 재차 독립한 아픈 역사 때문에, 에스토니아 국민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호의적이지 않다.
지금도 국민의 25%가 러시아계이고, 2차 독립 이전에 교육을 받은 세대는 대부분 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알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