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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터키 여행

에베소의 사도 요한 무덤 교회와 누가 묘 [ Bohemian Vlog 터키 여행 7]

 

에베소의 사도 요한 무덤 교회와 누가 묘

 

오늘은 사도 요한 무덤 교회와 누가 묘 성지 순례를 하시겠습니다.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은 신약성서 요한복음의 저자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후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끝까지 모신 성자였다. 그리스도는 죽기 전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수스로 왔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후에는 감람나무에서 목매달려 순교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사도 요한이 시무하던

에베소교회 밖에 장례되었다고 전해진다. 

 

YouTube Bohemian Vlog로 사도 요한의 묘와 누가의 묘를 성지순례하시겠습니다.

 

사도 요한이 숨진 곳, 셀축의 사도 요한 교회

 

사도 요한 교회는 웅장한 대리석 건축물이다. 이 웅장한 돌은 어디서 가져 왔을까.

3.5km 떨어진 에페수스(Ephesus) 유적지와 근처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중 한사람인 사도 요한을 기리기 위해 서기 548년부터 565년까지

17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동로마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확장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I)가

사도 요한의 무덤을 교회로 만들라는 명령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에페수스의 주교

히파티우스(Hypatius)가 공사를 지휘했다.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의 성 사도교회(Church of the Holy Apostles)를 본 따 십자형으로 건설되었다.

(성 사도교회는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1453년에 파괴되었다.) 바닥과 기둥을 대리석을 사용했고,

지붕은 돔 형태로, 목재로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동쪽 끝을 반원형으로 만든

애프스(apse)다. 길이 110m에 폭 140m다.

 

 

사도 요한 무덤 표지석

사도 요한의 무덤은 교회 동쪽 끝에 있다. 네 개의 기둥이 세워진 그의 무덤 대리석 석판에는

“이곳은 나의 영원한 쉴자리, 여기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박해의 문

이 문은 요한의 교회 앞에 세워진 것으로 대리석 부분을 에베소의 경기장에서 가져온 것인데, 야수와 전사들의

결투를 즐기던 3-4세기의 로마인들에게 기독교인들이 이 경기장에서 야수들의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된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이 경기장으로 달려가서

그 대리석들을 부수어 박해의 문을 지은 것이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후에는 감람나무에서 목매달려 순교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사도 요한이 시무하던 에베소교회 밖에 장례되었다고

전해진다. 에베소로 들어가는 길가에 있는 누가의 묘 유적지에서 십자가와 황소가 양각되어 있는 돌비가

나왔는데 그 묘비의 황소는 누가의 무덤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

 

 

에베소의 누가의 묘 입구의 한글로 된 안내문 

 

그는 자신의 애인을 앗아간 원수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 의학을 공부했다.

그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을 만나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바울의 선교를 도우면서 일생을 숨어서

섬기는 일을 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로마의 원로인 클레멘스 집정관에게 써서

전해주었고,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우상숭배자들에게 붙들려 감람나무에 목매달려 순교했다.

순교 후 누가의 시신은 사도 요한이 사역하는 에베소에 가져와서 안치되었다고 한다.  

 

누가는 헬라인이며 안디옥 출신으로, 누가의 아버지 엔자와 어머니 이리스는 로마의 판사 디오도로스 시리누스의

아버지인 푸리스쿠스의 종이었다. 푸리스쿠스는 누가의 아버지의 헌신적인 죽음을 통해 누가의 가족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누가는 디오도로스 시리누스의 딸 루불리아를 사랑했으나

그녀는 말라리아의 열병으로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