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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이스라엘

[추억여행 이스라엘 #2] 부활절의 유래와 이스라엘 성지 순례로 찾아 본 '예수승천 교회와 통곡의 벽'

 

 

먼저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생존자들이 하루 빨리 구조되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절의 유래와 날짜 계산법, 올해는 언제일까요?

 

부활절 날짜 계산법은 좀 복잡한데요. 

부활절은 매년 춘분 뒤의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정해집니다. 

정확한 날짜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매년 춘분과 그 다음에 뜨는 보름달의 날짜를

헤아려봐야 부활절 날짜를 알 수 있죠. 


2014년인 올해 춘분은 3월 21일이고 그 뒤로 첫 만월은 4월 14일 월요일 입니다. 

그래서 2014년 부활절은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인 4월 20일이 되지요. 

부활절은 기독교 및 천주교 행사로 한국의 절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음력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기념일이 있다지만,

기독교 및 천주교는 분명 서양의 종교이고, 서양에서는 양력을 사용해 왔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양력을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바빌론 사람들은 음력을 사용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70년 동안 바빌론에 포로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음력

사용법을 배우게 되었고, 명절 또한 모두 음력으로 바꿔서 지냈습니다.

 

그 때 춘분이 지난 첫 번째 만월(보름)이 되는 날을 유월절로 지켰으며,

부활절도 춘분 후 만월이 지난 첫 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바빌론 포로생활이나 유월절, 사순절,

부활절 등의 단어가 생소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단어이지요.

 

HappyEaster.jpg

 

부활절 하면 달걀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부활절 달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성서(성경)에는 부활절 달걀에 대한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근거한 정확한 유래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에게는 사순절 기간에는 달걀 사용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에는 다산과 새로운 삶을

상징하는 달걀을 붉게 칠해서 가져오게 되었고, 부활절 달걀은 여기서부터 유래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사순절은 부활절 이전 40일(주일 4번은 제외)을 의미하는 절기입니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오는 모습은 흡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이고,

부활의 의미로 달걀을 붉게 칠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절 달걀은 기독교나 천주교가 아닌 이방 종교에서 비롯된 관습입니다.

이방 종교인들이 기독교나 천주교로 유입되면서 이방 종교인들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부활절을 성서에서는 부활을 의미하는 "The Resurrection day(레저렉션 데이)"로 기록했지만,

현재 교회에서는 "Easter(이스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aster"는 원래 튜튼족과 앵글로 색슨족 등 게르만족이 "봄의 여신"으로 숭배하던

"Eostre(에오스트레)"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봄의 여신은 생식과 다산을 상징하는 신입니다.

그래서 게르만족 신화에는 다산의 신인 토끼가 나타나서 집 앞에 알을 두고 가면 풍년이 든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부활절의 유래를 말씀 드렸고

그럼 지금 부터 타임 머신을 타고

22년전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현장으로

달려가 보시겠습니다.

 

 

예루살렘 성 약도 앞에서

 

유대인들이 신성시 하는 최고의 기도처 통곡의 벽

 

오랫동안 '통곡의 벽' (the Wailing Wall)이라 불리고 있는 이 성벽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전 서쪽벽을 일컫는다.

최고 14 m 의 길이와 400 t 이나 되는 돌을 비롯하여 평균 1 ~ 3 t 의 돌을

이용하여 쌓은 높이 16 m의 이 성벽은 헤롯 대왕 때의 것으로  그가 왕위에 오른 이후

건축이 시작되어 약 60여년 동안이나 걸려 지은 것들이다. 이 헤롯의 성은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지렛대로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도록" 무너뜨렸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통곡의 벽 아래 부분은 당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은 유대인의 최고의 기도처가되고 있어 많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러 모이는 곳이다.

2천년 동안의 방랑생활 가운데서도 예루살렘에로의 귀향이라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신앙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특히 안식일이나 절기 때가 되면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종종 성년식 (Bar Mitzbah)을 행하는 춤추며 기도하는 소년과 그의 가족들의 모습도 지켜 볼 수 있다.

이곳은 여느 회당이나 마찬가지로 남녀가 각각 칸막이로 나누어진 구역에서 기도한다

 

1967년 6일 전쟁때 이곳을 탈환한 유대 군인들의 감격은 2천년 만에 예루살렘을 되찿은 유대인

전체의 감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그들은 2천년 동안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꾸었으며, 2천년 동안 행하여 온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Next year in Jerusalem) 라는 기도가 이루어 진 것이었다.

 

예수 승천 교회

 

지금으로 부터 20여년전 1992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기회를 가젔습니다.

생각하면 일생에 자주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여행이였습니다.

 

지금같으면 귀한 순간들을 디카로 많이 담아 왔을텐데 하면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만, 그때는 성지순례 그자체가 귀중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활절을 맞아 그때의 귀중한 순간들을 추억해 봅니다.

 

 

해발 830m의 감람산 정상까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아랍인들의 마을 속으로

비집고 차도를 따라 올라가면 높은 돌담 벽을 만나게 됩니다.

그 높은 돌담 벽에는 굳게 잠긴 철문 하나가 있는데 그 철문 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현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승천 돔이 있는 곳은 담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여 있는데,

좁은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담장 안에 지름이 3~4m쯤 되는 3단으로 돌로 쌓여진 건물이 바로 승천 돔입니다.

이 건물의 아래는 8각형이고 여덟 방향 모두 아치형의 문이 있으나 지금은 모두 벽돌로 막혀 있고,

한쪽 면만 통행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습니다.


 

 

 

성전산의 황금돔 사원

637년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성전산, 곧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곳에

처음 세운 사원으로 오말 사원이라고도 한다.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사원에 이어 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이라 하여 이슬람에서 세 번째 가는 성소로 받들어지고 있다.

정팔각형의 기하학적 구조로 설계된 벽에는 화려한 모자이크로 된 창이 있고 코란의 기도문과 알라 세계의

조화를 상징한 전형적인 무늬가 사원 안과 밖에 장식되어 있다. 팔각면의 벽체가 있으나 문은 동서남북 네 군데만

출입문이 있고 중앙에 있는 황금빛 찬란한 돔은 예루살렘의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띄는 도시의 상징적인 명물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가 빼앗고 빼앗기고 회복하기를 반복해 온 서로의 성지(聖地)…지금은 회교사원인

황금 돔을 바라보며 수세기 동안 거세게 회오리쳤을 역사의 숨결을 가만히 느껴본다.

 

 

동영상 예루살렘 성전과 황금돔

 

 

 

블친 여러분!

Happy E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