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얼굴과 크레이지 호스
큰바위얼굴이란 미국 작가 나사니엘 호손의 단편소설 제목으로 한국 교과서에
나왔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 조각상을 한국사람이면 다같이 큰바위얼굴이라 부르지요.
그러나 러쉬모어 국립기념물 공원은 이 소설과는 별로 관계는 없지만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이 다들 큰바위얼굴로 통하지요.
그런데 여기 관광오시는 분들은 미국역대 유명 대통령 조각상을
보러 오지만 미국 역사의 뒷면에 있는 용감한 인디언 추장 '크레이지 호스'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고는 한편으론 슬픔에 잠깁니다. 미국 역사의 빛과 그림자이지요.
인디언 쪽에서는 크레이지 호스가 그들이 추앙하는 영웅이요.
미국쪽에선 네분 대통령이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밑의 큰바위얼굴이 흐린 것은 방문 당시 일기가 고르지 못한 우중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래도뿌연 안개속의 귀한 사진이라 신비하기만 합니다.
어떤 맑은 날에 찍은 사진 보다 귀하고 소중한 추억입니다.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U.S. National Park Service)
13000 S Dakota 244, Keystone, SD
추천과 구독 감사합니다.
'희뿌연 안개속의 신비한 네분 대통령 조각상'
왼쪽 부터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마스 제퍼슨, 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을 세운 워싱턴, 루이지아나를 나폴레옹으로 부터 사들리고 땅을 넓힌 제퍼슨, 남북으로 갈린 나라를
통합하고 노예해방을 한 링컨, 그리고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 루즈벨트 등 네분 대통령을 새긴 대통령 조각상입니다.
이 지역의 지질은 10,000년 동안에 1인치 정도 밖에 마모되지 않는 단단한 화강암이어서 이런 조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1924년 착수되어 1930년 워싱턴의 흉상이, 1936년 제퍼슨, 1937년 링컨의
얼굴이 완성되었고, 마지막으로 루즈벨트의 얼굴을 조각하던 보글럼은 1941년 세상을 떠나
그를 이어 아들인 링컨 보글럼(Lincoln Borglum)이 이 대통령 조각상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러쉬모어산 큰바위얼굴은 이 조각품의 탄생을 목격한 세대에게 1차대전의 승리 이후
미국 낙관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또한 1950년대와 60년대에 성장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대표적인 가족 여행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의 입장에서
이 조각품은 파기된 조약과 패전을 상징합니다
좀 맑아진듯한 대통령 조각상
덴마크계 미국인 조각가 거츠 보그럼이 1924년에 구상한 러쉬모어산의 큰바위얼굴 조각상은
‘민주주의의 성지’로서, 미국의’ 역사를 건국(워싱턴)에서부터 초기 성장기(제퍼슨), 보존기(링컨) 및
20세기의 견실한 성장기(테디 루즈벨트)를 대표하는 대통령들의 얼굴상을 조각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기념비적 조각 작업은 1927년 10월 4일 시작되어 14년 후인 1941년 10월 31일 완료되었습니다.
화강암의 먼지가 걷히자 러쉬모어는 6층 높이의 거대한 얼굴 네 개가 블랙힐스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영구히 변모되었습니다.
다시 안개속으로 숨을려는 대통령 조각상
비록 미국은 보그럼의 위대한 업적(보그럼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링컨이 조각상을 완성함)을 찬양했으나,
사우스다코타주의 라코타 인디언들에겐 그 작업은 그들의 탄생 신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소 파하사파(블랙힐스)를 훼손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큰바위얼굴'을 볼 때에는 날씨가 흐렸었는데.
'크레이지 호스'를 볼 때에는 날씨가 개였습니다.
날씨도 '크레이지 호스'편이었습니다.
위대한 추장 '크레이지 호스'
위대한 추장 크레이지 호스, 시팅 불 및 갤은 저항군을 조직하여 결국 리틀 빅혼(Little Bighorn)에서
조지 카스터 장군의 제 7 기병대를 전멸시키다시피 격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스 다코타는 아메리칸 인디안들에게는 아픈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운디드니는 인디안들이 대규모 학살당한 곳이기 때문이\입니다. 그들의 성지였던 블랙힐스 내에 Crazy Horse 는
인디안 추장 크레이지 호스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는데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즉 네명의 대통령 얼굴을 크레이지 호스
한사람의 얼굴에 넣고도 남을만한 크기입니다. 이 대규모사업을 정부기금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민간 기부금만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고 합니다. 어쩌면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은
인디안들의 자존심이자 일종의 궐기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 후 1868년 조약에 의해 이 지역에 대한 토지 문서가 수족에게 ‘영구히’ 부여되었으나,
그렇게 얻은 소유권도 불과 6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자
미국 정부가 땅을 다시 회수했던 것입니다. 1876년 미국 정부는 모든 라코타 주민에게
보호구역으로 이전할 것을 명하였고, 위대한 추장 크레이지 호스, 시팅 불 및 갤은 저항군을
조직하여 결국 리틀 빅혼(Little Bighorn)에서 조지 카스터 장군의 제 7 기병대를 격파했습니다.
하지만 수족의 승리는 오래 가지 않았으며, 2년 후 크레이지 호스가 죽으면서 그들의 운명도 결정되었습니다.
1939년 화강암에 새겨진 대통령들의 얼굴이 드러나자 수족은 자신들도 따로 기념물을 세운다는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보스턴 출신의 조각가 코작 지올스키에게 의뢰하여 러쉬모어에서 남서쪽으로 27km 떨어진
블랙힐스 산의 다른 곳에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을 새기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이 작업은 1947년에
지올스키의 주도 하에 시작되었습니다. 산의 한쪽 면에만 새겨진 큰바위얼굴의 조각상과는 달리
크레이지 호스의 상은 사면을 모두 이용해 위대한 추장이 팔을 뻗친 채 말에 타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됩니다.
또한 이 기념물은 큰바위얼굴이 왜소하게 보일 만한 정도인 171.6미터 높이에 195.4미터 길이의 크기로 만들어집니다.
(팔 하나의 길이가 축구 경기장보다도 길 정도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입되었습니다. 지올스키는 1982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가족이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백만 톤의 암석이 산에서 발파되었고,
크레이지 호스의 머리와 말 머리 윗부분이 반쯤 완성된 단계에 있습니다. 최종 완성 날짜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이 프로젝트는 “꿈을 절대 잊지 말라"는 모토 하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이제는 소수 민족으로 전락되어
그들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눈물나는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