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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일리노이

미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링컨박물관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

 

시카고에서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스프링 필드에는 일리노이 주청사와 함께

에브라임 링컨이 살았던 뉴 살렘과 링컨 박물관, 일리노이주 청사가 있다.


링컨은 1831년에 스프링필드에서 약 30분정도 떨어진 뉴 살렘 통나무집 시골마을에 도착하여

6년동안 살면서 청년기에 가게 점원, 우체국 일, 나무를 자르는 일, 측량사 등 힘든 일을 하면서

독학으로 법률 공부를 해 변호사가 된곳이며 정치가로써의 큰 목적을 갖게 해준 마을이다. 
 

 

 

미국 역사상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온 대통령은 없을 듯 합니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초대 대통령 죠오지 워싱톤과 함께 미국 국민들에게는 신화적인 존재입니다.

그런 만큼 전해져 내려오는 그에 대한 이야기에는 사실과 함께 전설적인 요소들도 적지 않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링컨에 대한 논문과 저서들이 아직도 1년에 수 천 건씩 발표되는 상황이니

그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미국인들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존경할만한 대통령으로 아브라함 링컨을 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1809년 켄터키의 통나무 집에서 학교교육이란 받아 보지도 못한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났으며

자신도 학교교육이란 1년도 채 받아보지 못했고 스스로 읽고 쓰는 것을 배워 독학으로 일리노이주의 변호사가 되었다”는

간단한 이력서가 당시 알려져 있는 내용의 전부였습니다. 링컨은 켄터키에서 태어나 인디아나에서 자랐고

일리노이에 와서도 여기 저기를 전전하며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의 어린 시절과 청 장년기, 와싱톤의 정치무대에는 신참이라고할 수 있는 구레나루 수염의 꾸부정한

키 큰 서부 사나이가 대통령이 되어 엄청난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대통령에 중임되어

그의 진면목이 기대되던 때 미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암살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링컨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비록 한차례 대통령 임기를 마쳤음에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고 알고 싶은 것들도 많았던 신비에 쌓인 인물이었습니다.

괴한에 의한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받아졌고 그를 성인화, 신격화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 링컨에 대하여 종교적으로는 회의론자이니, 저속한 농담이나 하고 무례하고 괴상한 사람이니,

권력을 남용하는 자라는 좋지 않은 이야기들과 함께 국가에 재앙을 가져 온 악의 화신으로 증오하는

극단적인 사람들(특히 남부의)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리노이주 수도 스프링필드 다운타운의 인포메이션 센터

옛날 기차역이었던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인포메이션 센터로 사용하고있다.

'일리노이'의 원뜻은 '진실의 땅'

그러나 일리노이 주정부는 'The land of Lincoln'으로 부르면서

리플렛은 물론이고 자동차 번호판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주정부는 링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를 모든면에서 홍보하고 있다.

 

스프링필드 다운타운 중심가에 이렇게 링컨의 동상과

뒤에 보이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일리노이 주에는 링컨과 관련된 곳이 210여군데가 있고,

여기 스프링필드에만 48군데가 있다고 주정부 관광안내센터는 설명하고 있다.

링컨의 집, 변호사 사무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떠나던 기차역, 링컨이 자주 걷던 길,,,

 

1861년 3월 4일 첫번째 대통령 취임사

 

 

아브라함 링컨 파크웨이와 링컨 박물관

 

링컨 도서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

 

미국 제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을 기리기 위해 2005년에 개관하였다.

 일리노이 역사보존국(Illinois Historic Preservation Agency)이 설계를 담당하였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도서관재단(Abraham Lincoln Presidential Library Foundation)이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링컨 인생의 주요 사건과 관련된 사진, 기록물, 공예품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어린 시절 살던 주택과 백악관의 실물크기 모형, 링컨의 서명이 있는 노예해방선언문(Emancipation Proclamation),

 안경과 면도 거울 등의 일상용품, 부인 매리 링컨(Mary T. Lincoln)의 물품 등이 주요 전시품이다. 전시 이외에도 영상물

‘링컨의 눈(Lincoln"s Eyes)’과 ‘도서관의 유령들(Ghosts of the Library)’을 상영하고 있다. 도서관은 링컨의 인생과 남북전쟁(Civil War)과 관련된 각종 서적과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일리노이 주()의 역사 관련 자료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도서관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하고 있다.

 

일리노이주 수도인 스프링필드의 지도가 박물관 입구 안내소에 설치되어있다.

링컨 박물관은 물론이고 여러군데의 링컨 관련 장소를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링컨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는 유니온 극장

링컨의 눈과 입은 슬픔을 동시에 나타낸다고 한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링컨은 온화한 표정으로 바뀐다고 한다.

 

 

아내 매리 토드(Mary Todd)

링컨이 결혼하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있었던 듯 합니다. 스프링필드의 변호사가 되기 전 20대, 살렘 일리노이에 있을 때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충격이 컸던 듯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메리 토드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이 가난하고 비천한 가정 출신에 학교 교육을 1년 밖에 받지 못한데 비하여 매리는 켄터키의 성공한 은행가의

딸로 학교 교육을 12년이나 받은 당시로서는 무척 깨인 여자였습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언니와 함께 지내려고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로 이주해 온 그녀는 당시 시골 변호사였던 링컨의 자질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 본 사람입니다.

그녀 앞에는 후에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링컨과 유명한 토론을 벌이며 경쟁을 벌였던 더그라스(Stephen Douglas) 와

링컨이 있었습니다. 매리는 언니의 ‘평범한 시골뜨기’라는 폄하에도 불구하고 링컨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링컨에게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재능을 보았던 것입니다.

 

 

결혼한 후에는 ‘시골뜨기 변호사’를 ‘세련된 정치가’로 키우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습니다.세련되지 못한 링컨의

옷 입기나 행동거지를 상류사회에 맞게 고쳐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잔소리가 심했다는 소문의 진원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방 변호사로, 지방 정치에 개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한 링컨에게 좀더 큰 꿈을 가지고

연방정치에까지 진출하도록 부추긴 것도 매리었습니다. 그녀는 지독한 야심가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링컨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듯 합니다. 링컨은 지방순회 법정을 따라 지방을 출장하는 일이 많았지만 집에 돌아와 있을 때에는 종종 아내와

정치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 주위사람들에게 “매리가 나에게 연방상원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곤 했었지” 라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링컨 부부는 Robert, Edward, William 그리고 Thomas 등 네 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로버트만이 남았고

에드워드는 3살 때, 윌리암은 11살 때 그리고 도마스는 18살 때 세상을 떠나?

매리에게 일생 동안 큰 슬픔을 남겨주었습니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링컨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싶과 정치가로서의 능력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와싱톤 정계에서의 그의 활동은 한 차례의 하원의원과 한 차례의 대통령 임기(재선 취임 후 40일만에 암살됨)를

합쳐 6년 정도였고 정가에 이름이 알려졌던 기간이 10여 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가장 힘든 문제들을 해결해 내면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기억되는 데에는

그만한 그의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링컨의 외모

아브라함의 인기 가운데는 그의 외모가 한 몴 한 것도 사실인듯합니다. 주로 초상화에 의하여 전해져 오는 이전 대통령들의

모습과는 달리 링컨은 당시 발명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사진술의 덕분으로 다양한 사진들로 대중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으로 링컨만큼 사진을 많이 찍은 사람은 없을 것 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만큼 외모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턱수염을 길러보라는 11세 소녀의 권고를 받아들여 인상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졌으며 아브라함 역시 그 소녀의 편지를 품속에 넣고 다니며 자랑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박물관내에 있는 기념품점에는 링컨 모자며 많은 기념품이 진열되어 있다.

 

유명한 게티스버그 전쟁을 테마로 한 게임도 팔고 있다.

 

링컨 대통령은 1809녙 2월 12일에 켄터키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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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 파우치가 기념상품으로 걸려있다.

 

링컨에 관한 도서며 많은 관계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오늘은 일리노이주 수도 스프링필드에 위치한

링컨 박물관을 구경하셨습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

 

여러분의 추천은 큰 힘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