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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정 오는정

루벤스가 그린 조선인,기구한 운명의 '한복 입은 남자'

 

 

 

미국 살면서 이민자들은 자의로 와서

그들 나름대로 자기의 포부를 펼치면서 살고 있으나

물설고 낯설은 곳이라 정착하기 까지 많은 고충이 따릅니다.

 

그러나 타의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그리고 그기서

다시 이태리 피렌체까지 흘러 간 한 조선인 '안토니안 코레아'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할 때 그동안 격은 그의 고초가 얼마나 크고 많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생각하면 그는 타의에 의한 최초의 이민자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4백년 전의 그림 이야기입니다.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1990년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베니스 상인`의 모티브는 미국 LA 폴게티 박물관의 전시된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를 본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그림 속 주인공이 임진왜란 당시 왜병에 끌려가 피렌체까지 흘러 간

조선인일 것이라 추측해서다.

하지만 최근에는 에도시대 일본에 체류했던 네덜란드 스펙스 무역관장에게 발탁돼 피렌체로 간 조선의 전직 관리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옷차림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입고 있던 16세기 철릭과 닮았기 때문이다.

 

 

 

목회수상                             한복 입은 남자                        이용삼 목사

 


   어린이 동화책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 네로는 화가가 꿈이었고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결국 마지막 죽을 때 그 소원을

이룬다. 동화책의 현장은 네덜란드다. 바로 이 루벤스의 이야기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1577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네덜란드로 이주 잠시 이탈리아에 머물었지만 대부분은 네덜란드에서 생애를 보낸다. 이름이 베드로 바울 루벤스라 한 것을 보면 부모들이 종교적인가보다. 실제 그는 다작 작가로서 수많은 그림은 남겼다. ‘최후의 심판’ 을 위시하여 기독교적 그림들의 많다는 것은 이를 말한다. 1640년 네덜란드 안드라프에서 죽기까지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런데 그 당시 어떤 경로를 통해 만났는지 그의 그림 가운데 ‘한복을 입은 남자’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1617년 그렸다니 꼭 4백여 년 전의 그림이다.

이때 조선은 임진왜란이란 전쟁이 끝이 난지 10여년 지난 때다. 이런 한 때 저 서양 사람인 네덜란드의 화가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한복을 입은 조선 사람을 만났을까. 서양 사람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그림이란다. 지금은 이 그림이 미국의 폴 게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두건 같은 모자를 쓰고 풍성한 한복에 양쪽 손을 통이 큰 소매에 집어넣고 서 있는 자세다.


   역사학자의 추정으로는 그림의 주인공 이름이 안토니안 코레아라한다. 정유재란이 끝나면서 당시 퇴각하던 일본 군인들에 의해 포로로 일본까지 잡혀 간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곳에 파견 나와 있던 로마의 선교사 신부에 의해 그를 이탈리아 돌아갈 때 같이 동행 하였으면 피렌체로 돌아가

그를 자유인으로 만든 것이다. 성씨도 Corea 코레아로 명한 것이다. 지금도 이탈리아 남부 알비시라는 마을에는 3백여 명 코레아씨가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루벤스의 생애를 보면 이때쯤 그는 네덜란드를 떠나 이 곳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며 오랫동안 거주 했다는 사실을 맞아진다. 그래서 그곳에서 코리아를 만났으리라. 짐작이다.


   하지만 이건 가설에 불과할 것이다. 어릴 때 일본에 잡혀간 사람 게다가 이태리까지 타의로 끌려간 사람이 한복을 그곳에서 입었을까. 어떻게 한복을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이다. 대신에 어쩜 그 때쯤 한국 사람들도 네덜란드 혹은 유럽 어디인가 있었으리라는 짐작이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이 일본으로 향하다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도착하였을 때는 64명 중 겨우 36명이 생명을 건진다. 제주도에서는 거의 포로 생활

같이 살다가 목숨을 걸고 배를 구입 8명이 탈출 일본으로 건너간다. 제주도 생활 13년을 나중 ‘하멜 표류기’로 네덜란드에 알린다. 1660년 때 일이다. 거의

4백 년 전이다. 그만큼 서양인들이 목숨 걸고 무역하던 때 조선과 무역을 위해 조선 사람들을 확보 저들 고향 네덜란드로 갔을 것이고 한복을 입은 일꾼들의 특별한 모습을 본 루벤스가 그렸으리라 하는 생각이다.


   루벤스의 한복 입은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인들도 나라 밖을 바라보며 세계를 향한 꿈을 가진 엉뚱한 사람들도 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경영하는 태권도 도장이 6천여 개가 넘는단다. 전 세계 흩어진 교포들이 8백만이라 하지 않는가. 물론 나라가 발전하는 지난 5,60년 사이의 일이겠지만 그게 갑자기 이루어 졌을까. 수백 년 전에도 진취적인 사람들 아니면 ‘조선은 소망이 없어’ 하고 외국을 겨냥했던 깨어있는 젊은이들의 개척정신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생각이다. 이들 선각자들에 의해 나라와 국력이 세계로 전해 졌을 것 아니겠는가.


   가령 신라시대의 중 혜초도 그중 한 사람이다. 혜초는 1300년 전의 삼국시대인 신라 사람이다. 16세에 당나라에 유학을 간다. 그곳에서 여행을 시작 뱃길로 지금의 말레이시아를 거쳐 인도로 갔고 그곳에서 도보로 4년간 2만 Km를 여행한다. 인도, 티벳,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지금의 중앙아시아 타건토쉬

까지 그리고 몽골을 거쳐 다시 중국의 장안까지 되돌아 왔다. 그 기록이 ‘왕오천축국전’ 아닌가. 그 진본이 어떻게 프랑스에 있을까.


   미지와 미래를 향한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미지에 대한 열망이 그 젊은 나이에 그 많은 여행을 섭렵한 것이다. 그것뿐인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때 자연히 조선을 한국을 알리는 대표자가 된 것이리라.


   한때 영국의 젊은 가수들 비틀즈가 미국을 정복했다는 문화적 측면에서도 오늘날 K-Pop 이 미국을 정복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용기만이

아니다. 꿈이 있어야 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헌신도 요구 되는 것이다.


   이런 미지를 향한 도전의 정신은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같은 마음을 볼 수 있다. 작년 말(2010년) 현재 한국 개신교는 세계169개 나라에 2만 445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통계를 읽는다. 48%는 각 교단에서 파송했었고 그리고 52%는 선교 단체를 통해 보낸 것이란다.


   요즘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세계의 구석인 오지에는 여전히 생명의 위협과 여러 가지 한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1세기 때의 바울 시대나

18세기 말 암흑의 조선을 향하던 선교사들이나 비슷한 환경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복음의 비밀과 복음의 축복을 심어 준다는

것은 맨 정신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다. 몰론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런 젊은이들을 감동케 하셨지만 한국 사람이 갖는 도전의식 미지에 대한 개척정신의

DNA가 잠재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을 떠나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물설고 낯선 이방 땅 미국에서 뿌리 내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민자들에게도 이 같은 DNA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날 이 미주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보면서 비록 외톨이라 할지라도 저 옛날 ‘한복입은 남자’라는 외로운 삶에서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살아 간 선조들의 도전 정신 개척 정신으로 이 땅을 일구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더 넓게 더 멀리 한복 입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지난 주 추석을 전후하며 곱게 한복을 입고 오신 소망회 회원들을 보면서 한복 입은 사람이 생각이 났었다. 벌써 10월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인가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단풍도 들고 낙엽도 떨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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