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Turk섬에 상륙하다.
섬의 초기 거주자들은 수세기이상 아라와크 족을 포함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으며,
점차 카리브인으로 바뀌었다. 1512년 섬을 발견했던 첫 번째 문서화된 유럽인은 스페인 정복자
후안 폰스 데 레옹이었다. 16세기, 17세기, 18세기 동안 제도는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지배까지 넘어갔지만 3대 세력 중에서 아무도 어떤 정착도 하지 못했다.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주민들이 일반적으로 바하마에서 사용하는 크리올과 유사한
크리올을 사용한다. 쿠바,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과 접해있어서 스페인어, 아이티어도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출신의 이주민들사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서인도 제도에 있으며 터크스와 케이커스 군도로 구성되는 영국령의 제도이다.
면적은 948 제곱킬로미터로 대략 강원도 횡성군보다 약간 작으며, 인구는 대략 48,000명
정도로 강원도 철원군과 엇비슷하다. 수도는 콕번타운이다.
기원전에 원주민 아라와 족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에스파냐인에 의해 발견 되었을 때는 무인도였다.
제도의 발견은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1512년 의 후안 폰세 데 레온
(Juan Ponce de León)이 발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에스파냐는 이 섬을 프랑스에 팔았고,
시간이 흘러 영국으로 건너와 있었는데, 에스파냐 선박을 습격하기 위한 해적 소굴로 이용한 이외는
거의 무인도 상태였다. 1681년 버뮤다에 서 소금 채취를 하던 영국인들이 채굴이 쉬운 그랜드 터크 섬에
정착하게 되면서 영국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1780년대에는 미국인들이 노예를 데리고 면화 재배를
시작했지만 태풍 피해로 1820년에 동행하고 있던 노예를 두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노예는 고기를 채집하여
생활하였고 현재 대부분의 섬주민들은 그들의 후손이다. 1799년 영국령의 바하마에 속했지만 이후에는
자메이카에 속했다. 1962년 자메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 혼자 영국 직할령이 되었으며,
1965년 다시 바하마에 편입되었으나 1973년 바하마의 독립으로 두 제도는 분리되어 총독을 두었다.
1982년 독립 결정이 나왔지만 이후 취소되고 현재 영국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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