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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크루즈 여행/타히티+보라보라 크루즈

[여행 에피소드 4] 진품이 한점도 없는 고갱 박물관을 가다. (파페에테/타히티/남태평양)

 

 

 

고갱 박물관

 

고갱이 화가로서의 인생 중 상당 기간을 보낸 타히티에는 고갱 박물관이 있다.

 그런데 "Musèe Gaugain"이라고 간판을 걸고 있으나,  정작 이곳의 콜렉션엔 고갱의

 진품 그림은  한 점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갱은 돈이 필요해서 그림을 그리면 그리자마자 배편으로

 프랑스로 보내 팔았기 때문에 당연히도 타히티에 남은 건 없다. 고갱이 직접 만든 것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도자기 하나랑 목각 숟가락 세 개가 전부. 고갱의 그림 말고, 고갱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갔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가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타히티가

우리나라에서 일부러 가기엔 너무나 먼 남태평양에 있다는게 문제다.

 

고갱 그림을 보러 갔지만 지금은 문이 닽혀 있어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밖에서 박물관 구경만 하고 왔다.

 

 

폴 고갱 박물관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d/Gauguin_portrait_1889.JPG/729px-Gauguin_portrait_1889.JPG?width=400

폴 고갱



 

 

타히티에서의 고갱의 삶은 그야말로 궁핍과 뻘짓의 극치였다. 그림을 그려서 프랑스로 보내서 친구들에게

 팔아서 돈을 부치라고 했고 친구들은 어렵게 그림을 팔아서 돈을 부쳐줬다. 하지만 고갱의 경제관념

자체가 빵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쳐진 돈은 며칠 안돼서 날리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투견본능이 충만했는지 타히티의 정치싸움에
끼어들어서  타히티에 건너온  중국인들을 대놓고 잘근잘근 씹는 글들을 현지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타히티의  중국인들은 지금도 고갱 이름만 나와도 손사래를 칠 정도라고.

 

이후 타히티보다 좀더 문명의 손길이 덜 탄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오아로 옮겼지만 이곳에서는 앞서

 정착해있던 가톨릭 주교와 다툼을 일으켰고 현지인들을 위한답시고 총독을 비난하는 등(...) 좌충우돌 했다.

결국 알콜중독과 악화된 매독의 증세로 1903년 5월 8일 고갱은 히바오아에서 숨을 거두었다.

지금도 그의 무덤은 그곳에 있으며, 덕분에 고갱의 묘는 유명 화가의

묘역 중에서 찾아가기 가장 빡센 곳이다.(...)

참조;엔하위키 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