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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행/중 국

[베이징/중국 여행 3 ] 제일 먼저 천안문 광장을 찾아 보며 자금성으로 가봅니다,(천안문/베이징/중국)

 

천안문

TV에서 자주 보던 천안문을 직접 와서 보니 대단하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제이 먼저 보고 싶었던 유적지가 이 곳 천안문과

천안문 광장이었다. 직접 와보니 외국 사람은 물론이요 중국 사람에게도

제일의 관광명소인가 보다. 중국 각지로 부터 온 인파가 대단하다.

 

천안문의 장소에 지어진 최초의 성문은 자금성을 건설한 명나라의 영락제 시대 1420년

건설된 <승천문>(承天門)이다. 이 문은 1457년 낙뢰로 소실되고 1465년에 재건되지만,

1644년이자성의 북경 공격으로 명조가 멸망했을 때 같이 소실되었다.

현재의 문은 청나라 순치 8년(1651년)에 재건된 것으로, 이 때에

현재의 〈천안문〉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천안문의 만주어는 '하늘의 평안한 문'이라는 뜻이며 한문으로는 '명을 따르고 하늘을

섬겨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백성을 다스린다'(受命于天, 安邦治民)는 뜻인데, 이것을 간략화한 것이

 '천안'으로서, 천안이라는 간략화한 말은 위의 만주어와 중국어의 뜻 모두와 통한다.

덧붙여 옛날 자금성의 북쪽에 있는 경산 위쪽으로 <지안문>(地安門)이 있었다.

명, 청 두 왕조 시대에 큰 법률이나 명령을 공표할 때 최초로 이 문에서 발표되었다.

또 출전하거나 개선하는 군대를 황제가 점검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현재에도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중국 국가주석이 이 곳에서 사열한다.

 

1949년 10월 1일에 시행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식에서 마오쩌둥은 이 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그 후 이 문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이 되었으며, 실제로 현재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에 그려져 있다. 1952년1970년에는 대규모 개수를 하였다.

자금성의 정문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며,

천안문은 베이징 황성 내성의 남문이다.

 

국기 계양대

국기를 계양하고 내릴 때도

의장병들이 의식을

하는 곳이다.

 

인민 대회당

 

인민대회당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는 건설사업인 10대건축의 하나로,

자원봉사를 받아 1958년부터 1959년에 걸쳐 불과 10개월 만에 건조되었다. 중앙의 만인대회당(萬人大会堂),

 북쪽의 연회홀, 남쪽의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사무소 빌딩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합계 17만㎡를 넘는 평면 면적과 300개의 방을 가진다. 33실 있는 회의장에는 중국의 행정구분에

연관된 이름을 붙일 수 있어 각지의 풍토와 관련된 장식이 되어 있다.

 

 

인민영웅기념비

 

인민영웅기념비(人民英雄紀念碑)는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시천안문 광장에 있는

중국 혁명 영웅의 현창비로, 1958년에 만들어졌다. 앞쪽(북쪽)에는 마오쩌둥이 쓴 금석문

(옛날 중국에서는 영웅들의 피를 빨간 문자로 나타냈다)인 "영원히 잠들어도 불후하리라"

("人民英雄永垂不朽")가 새겨져 있으며 뒷쪽(남쪽)에는 저우언라이가 쓴 현창문이 새겨져 있다.

 

 

오문

 

오문은 자금성의 정문입니다. 천안문에서 자금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거쳐야 하는 문이면서 자금성(고궁박물관)의 남쪽 입구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표를 사서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인파가 대단합니다.

오른쪽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자금성으로 입장해

봅니다.

 

 

자금성 규모가

대단합니다.

 

 

중국 사람들도

여기를 처음 와 보는

사람들이 꽤 많은가 봅니다.

복장들을 보면 제각기 다른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